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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드라마 <지옥> 리뷰, '지옥류' 장르의 기원 -1-

드라마 <지옥> 리뷰, '지옥류' 장르의 기원 -1-

 

Prologue.

 

20211119,

 

드디어 연상호 감독의 신작 <지옥>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됐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포스터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지옥>은 어느 날 인간에게 천사가 죽을 날짜를 고지하고 죽음의 사자가 인간들을 지옥에 데려가는 사건이 벌어지며 생기는 이야기를 6부작의 드라마로 담고 있습니다.

 

0. 감독 연상호

이 영화는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기반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애니메이터 연상호감독의 오랜 팬이었습니다.

 

과거 <사이비>, <>, <돼지의 왕> 그리고 단편 애니메이션까지, 그는 사회에 산재한 문제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보고 잔뜩 날이 선 작품을 연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사이비>에선 종교, <>에선 군 문제, <돼지의 왕>에선 학교 폭력, 부산행의 프리퀄 <서울역>에선 청소년 문제를 담는 것처럼,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엔 언제나 시대상의 어두운 이면이 오롯이 담겨진 담론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 담론을 은유나 현학을 빌어 표현하는 것은 연상호의 방식이 아닙니다. 늘 각 작품마다의 주인공은 어떠한 문제의 구심에서 고군분투하며 그것의 실체, 혹은 있을지 모를 희망의 허상에 접근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과거 장편 애니메이션과 지금 영화들의 이야기적 차이를 꼽는다면 설정에서 오는 차이가 큽니다.

 

이전 장편 애니메이션 모두 훌륭한 작품이었던 사실을 전제로, 과거엔 드라마와 서사가 중요했던 반면, 실사 영화로 넘어오면서는 상대적으로 큰 이야기와 이색적인 설정(이전 단편들처럼)에 집중한다는 겁니다.

 

가령 아래와 같습니다.

 

<부산행> - ‘부산행으로 가는 기차에 좀비가 탄다면?’

<염력> - ‘어느날 염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반도> - ‘좀비로 황폐해진 도시에 돈을 찾으러 떠난다면?’

<지옥> - ‘천사에게 죽음의 고지를 받은 자가 지옥에 간다면?’

 

오히려 만화보다 실사로 연출한 영화·드라마의 이야기가 더욱 만화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폴 오스터(Paul Auster)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Paul Auster)’는 첫 문장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소설가입니다.

그의 1995년 작품 <공중 곡예사>를 보면 알 수 있죠.

 

“내가 물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열두 살 때였다.”

 

이 같은 도입부와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다음 줄을 읽지 않고는 못 베기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집니다.

 

과거 연상호의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비교적 드라마적 서사에 치중했다면 실사 매체로 넘어간 이후는 앞서의 폴 오스터처럼, 과거 단편 애니메이션들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만화적 상상력을 여실히 펼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과거 연상호 감독의 팬이었다면, 오히려 상업 실사영화 데뷔작인 <부산행>부터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쓰이던 날이 바짝 선 칼은 무뎌지리만큼 무뎌졌고, 냉소적이다 못해 극도로 염세적이기까지 했던 이전 애니메이션 작품들과는 달리 상업성에 치우친 게 아니냐는 아쉬움이었죠.

 

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오랜 팬이었다면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된 이번 <지옥>은 이전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었던 서늘한 느낌을 다시 만났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아래부터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담긴 리뷰가 시작됩니다.

 

1. <지옥> 이야기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속 유아인

영화의 이야기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는 지옥의 사자라 불리는 기괴한 괴물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사회의 혼란을, 2부에선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해 세력을 확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그에 대항하는 '소도' 집단의 대립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2. <지옥>의 독창성

서두에도 적었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매우 독창적인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이야기의 구조는 일견 SF나 재난영화 등의 장르와도 구성이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3)로 예를 들자면 어느날 외계인이 지구에 떨어졌다거나 어떠한 재난이 인간을 덮친다는 내용의 스토리를 상상해 보죠.

 

대체로 그러한 영화는 처음 모티브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비출겁니다.

누군가는 광신적인 종교에 귀의하고, 누군가는 집단을 이루고,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약탈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외계의 존재 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가 되죠.

 

이와 같은 서사의 공간과 시간을 압축해 놓은 버전이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스트>일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미스트>

그 외 비슷하게는 최근에 '본영화 순으로 꼽아보자면 <올드>, <그린 나이트>, <콰이어트 플레이스>시리즈, <더 씽(1982)>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들 모두 어느 날갑작스러운 재앙과 같은 일이 벌어진 후에 벌어지는 인간성의 변화를 일부 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선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도 앞서 예를 든 영화들과 비슷해보입니다.

 

반면, 위에서 예를 든 영화가 수용하고 수동적인 서사라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는 반대로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해 외계로 찾아가는 능동적인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새롭죠.

 

3. 참신한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것

이렇게 <지옥>과 비슷한 서사를 가진 영화를 나열해본 이유는 오히려 지옥이 가진 참신함을 역설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시 리들리 스콧 감독으로 돌아가자면 그는 1979<에일리언>을 통해 일종의 악한외계인의 원형을 창조해내기도 한 감독입니다. 그렇다보니 그 이후 제작된 많은 외계 SF영화들이 리들리 스콧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죠.

 

다시 말하면 <에일리언>에서 나오는 외계인을 원형으로 삼아 일종의 진화와 분화가 이뤄진 셈이죠. 예를 들면 인간에 몸에서 탄생, 기생하거나 숙주인 인간을 조종하는 등에 대한 모티브, <스타워즈>에서 보여지는 외계인의 모습과는 다른 흡사 '바퀴벌레' 모양을 한 외계생명체의 모습은 다분히 <에일리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을 터입니다.

 

영화 <에일리언> 속 외계생명체

 

한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989<어비스>를 통해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관 원형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후 30년 뒤인 2009년, <아바타>의 세계관도 우리를 즐겁게 해줬죠.

 

이처럼 우리가 한번도 본적없는 세계와 설정을 구축하고 창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작품의 위대한 지점이 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감독이 쌓은 <지옥>의 독창적인 세상은 그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리부트 된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인간과 유인원의 대립에 클리셰가 없다며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액션의 주체가 유인원이라는 점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아닌 원숭이(유인원)가 말을 타고 그 말을 조종할 때 그 자체로 클리셰는 무너집니다.

같은 11 액션 장면이라도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유인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뻔하디 뻔한 액션동작 조차 생경한 풍경에 재미를 느끼는거죠.

영화 <혹성탈출> 속 말을 타는 유인원의 모습

이처럼 <지옥>재미천사가 죽을 날짜를 미리 고지한다는 설정, ‘사자가 인간세계에 내려와 시연을 한다는 설정, 이 사태가 벌어진 이후의 인간상들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그 자체로서 큰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거죠.

 

 

4. 호? 불호? 서사의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관객

<지옥>이 공개된 이후 다수의 사람들은 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지만, 반대로 불호의 평가를 내리는 관객도 많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CG에 대한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처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대체로 불호 의견을 내는 관객들의 여러 의견 중 하나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없다”, “그래서 왜 갑자기 그 괴물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가는거냐”, “신이 지옥으로 데려가는 건 어떤 기준인거냐, 이해가 안된다처럼, 설정 자체를 스토리의 개연성의 흠결로 몰아 비판적인 평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마치 <지옥>에서 처음 공개 시연이 일어난 후 그 이유를 찾는 사람들에 물음에 새진리회가 답을 명확히 내려주는 것처럼, 관객들은 극 속에서 신이 사람들을 데려가는 의도가 명확하지 않음으로 인한 혼란에 빠져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사람은 항상 스토리의 개연성을 본능적으로 찾고자 노력합니다.

 

아래의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당연히 ’, ‘동그라미라고 답하실겁니다.

 

하지만 사실 이 그림은 작은 점들이 여러개 있는 그림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점들이 동그라미 모양으로 있으니 동그라미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렇게 사고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안정적입니다.

제가 강하게 이 그림은 동그라미가 아니라 점들의 집합이다라고 주장하면 여러분들은 불안감이 들겠지요.

 

이를 심리학에선 게슈탈트(Gestalt)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시지각적인 면 뿐만 아니라 사람은 어떠한 사건을 접했을 때도 그것을 객체적 사실이 아닌 이야기의 큰 덩어리로 보고자 합니다.

 

동사로 생각하는 동양, 명사로 생각하는 서양

 

잠시 본론에서 벗어나자면 이는 서양인 보다 동양인에게서 주로 강하게 발견됩니다. 왼편의 사진처럼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서양은 명사적으로 사고하고, 동양은 동사적으로 더 사고하는 것처럼 말이죠.

 

심지어 한 실험 연구에 따르면 교통사고에 대한 뉴스를 접한 뒤, 서양인은 사상자나 피해 규모 등에 집중하지만, 동양인은 어떠한 연유로 사고가 발생했는지, 사고로 인한 교통체증은 얼마나 심했는지, 피해자 가족에 대한 걱정 등 주로 사회적인 연결의 맥락에서 사고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 그 지점에서 저는 반대의 생각을 가집니다.

 

오히려 <지옥>의 서사를 이끄는 동력은 신이 인간을 공개적으로 데려가는 이유, 즉, '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Epilogue.

글이 길어져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2회의 포스팅에 걸쳐 하게될 것 같습니다.

 

네번째 꼭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배우나 이 드라마의 아쉬운점,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 해외에서 통할지에 대한 생각도 이야기 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영화에 대한 리뷰는 영화적 내용과 함께 인문학적이고 다양한 이야기의 곁가지를 그러모아 하고자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 "드라마 <지옥> 리뷰, '지옥류' 장르의 기원" 2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